[침략과 범죄의 력사] 조선전쟁과 미군의 만행 - 인두겁을 쓴 살인마 - 세균 및 화학무기사용도 서슴지 않고
[침략과 범죄의 력사]
2010년 4월
《침략과 범죄의 력사》
2. 조선전쟁과 미군의 만행
3) 인두겁을 쓴 살인마
□ 세균 및 화학무기사용도 서슴지 않고
조선전쟁에서 미제가 감행한 세균 및 화학무기의 사용은 우리 민족멸살을 노린 대범죄였다.
이러한 불순한 목적으로부터 미제는 조선전쟁이 발발하자 세균 및 화학무기사용을 제창하면서 그것을 저들의 침략전쟁수행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내세웠다.
미제는 시험적단계로서 국부적인 세균전만행을 교활하고 음흉한 방법으로 진행했다.
미제침략군은 1950년 12월초 공화국북반부의 일시적강점지역에서 쫓겨가면서 평양시, 평안남북도, 강원도, 함경남도, 황해도 등 여러 지역들에 천연두를 비롯한 수많은 전염병균들을 음흉한 방법으로 전파시켰다.
미군은 《가택수색》을 구실로 주민들을 강제로 집에서 몰아내고는 천연두균에 오염된 헌옷가지들과 어린이놀이감들을 집안에 마구 널어놓았다.
이리하여 미군이 쫓겨간 때로부터 7∼8일간의 잠복기가 지난 12월 중순에 이르러 천연두가 35개 지역들에서 동시에 발생하였다.
※ 미제야수들이 퍼뜨린 세균들에 의한 전염병은 1950년 12월 중순부터 1951년 1월까지 미군이 쫓겨난 평양시, 평안남북도, 강원도, 황해도 등 지역에서 폭발적으로 발생하였으며 발병건수는 급격히 증가되여 1951년 4월에 이르러서는 3 500건이상에 달하였다. 특히 미군의 일시적강점으로부터 해방된 강원도에서 1 126건, 함경남도에서 817건으로서 가장 심하게 천연두가 만연되였다.
미군은 천연두와 함께 류행성출혈열병원체도 마구 뿌리는 야수적만행을 감행하였다.
미군은 서울 이남 37°선까지 쫓겨가게 되자 인민군대의 진격을 막아보려고 발악하면서 38°선 중부이남지방과 서울 이북사이에 류행성출혈열병원체를 뿌리여 이 지역에 살던 수많은 주민들에게 심한 고통을 주고 귀중한 생명을 빼앗아가는 범죄를 저질렀다.
그후 전선이 38°선에서 고착된것으로 하여 류행성출혈열병원체의 피해를 오히려 저들이 입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였다.
※ 당시 미제가 극히 줄여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이 병에 걸려 2 100여명의 미군이 쓰러졌다고 한다. 이것이 미제가 전파한 류행성출혈열병원체에 의해 미군자신이 벼락을 맞게 되여 당시 세계적물의를 일으킨 유명한 《손오열사건》이였다.
이에 급해맞은 미제는 미륙군의 군의(세균전문가, 일본세균전범자 포함)들로 구성된 조사단을 부랴부랴 조선전선에 파견하는것과 같은 추태까지 부리였다.
이들이 남조선에 기여든것은 미제의 지령에 따라 감행한 류행성출혈열에 의한 세균전의 효능을 알아보고 더 강한 병원체를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다.
이에 대하여 1951년에 일본에서 발행한 《일본의사신보》에 련재된 《방역비화》(4)는 일본세균전범자들이 조선전쟁시기 맥아더사령부의 지시로 《현지(조선전선)에 파견되여 약 4개월동안 머물러있으면서 류행성출혈열병원체의 확보》에 종사하였다는것을 폭로하였다.
미군은 평화적주민들뿐아니라 거제도와 태평양상의 여러 섬들에 인민군전쟁포로들을 가두어넣고 세균무기시험대상으로 삼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살륙하는 야수적만행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1951년 3월 《유엔군사령부》의 《위생복리처장》 젬스준장이 인솔하는 제1091호 세균살륙정은 비밀리에 동해안 원산앞바다와 거제도앞바다에 정박하고있으면서 인민군전쟁포로들을 대상으로 매일 3 000여회의 세균무기실험을 감행하였다.
※ 1951년 5월 18일 UP통신은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이 배의 실험실에서는 36명의 세균전문가들이 북조선포로들을 대상으로 매일 3 000여회의 실험을 진행하고있으며 그 결과 거제도에 있던 북조선포로중에서 1 400여명은 중병에 걸렸고 그 나머지가운데서 80%는 모종의 질병에 걸렸다.》
미제는 1952년에 이르러서는 국부적인 단계로부터 전면적인 단계에로 이행하여 지역에 관계없이 대대적으로 세균탄을 투하하였다. 미제의 전면적단계에 따르는 세균전만행에서 특징적인것은 세균무기를 더욱 광범히 적용하기 위하여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데 있다.
미제침략군은 세균전을 정규작전으로 벌릴데 대한 상전의 명령에 따라 1952년 1월부터 3월까지 질병의 만연성정도, 세균무기와 용기의 종류별상태, 운반수단으로서의 비행기의 종류별적합성, 각이한 지대에 대한 세균무기의 사용효과, 투하하는 방법 등 세균전을 련마하는데 목적을 두고 공화국북반부의 서북부와 중요수송로, 후방의 주민지대에 매월 평균 10차이상 세균탄을 떨구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미군은 1952년 1월 28일부터 페스트, 콜레라 등 전염병을 전파하는 많은 량의 각종 독벌레들을 비행기로 실어다 공화국북반부지역에 련속 산포하였다.
미군은 1952년 1월 28일 강원도 평강군에, 2월 11일 철원군에, 17일 평강군에, 18일 평안남도 안주시에, 23일 평원군에, 25일 강원도 문천시에, 26일 평안남도 대동군에, 27일 평양시 강동군과 평안남도 순천시에, 29일 황해도 수안군에 파리와 모기, 거미를 비롯한 전염병균을 가진 각종 독벌레들을 대량적으로 뿌리였다.
※ 미제침략자들은 전면적인 세균전을 벌리기 시작한 1952년 1월 초순부터 3월에 이르는 기간에만도 공화국북반부의 169개 지역에 연 804차에 걸쳐 독벌레들과 균이 묻은 여러가지 물건들을 떨구었을뿐아니라 중국 동북지방의 광범한 지역에 이르기까지 세균탄을 떨구는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미군의 야수적이고 전면적인 세균전은 작전범위와 규모가 방대한 계획적이며 집중적인 세균공세로서 전쟁력사상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대범죄였으며 세균무기의 적용수단과 방법의 다양성, 악랄성에 있어서 전대미문의 대인간살륙전, 조선민족말살전이였다.
※ 1952년 3월 조선에 체류하면서 평양, 남포, 태천, 벽동, 안주, 안악, 신천, 사리원, 원산일대에서 전문적인 조사를 진행한 국제민주법률가협회조사단이 발표한 《조선에서의 미군범죄에 관한 보고서》를 비롯하여 《조선과 중국에서의 세균전사실에 대한 국제과학조사단의 조사보고》는 미군의 살인적인 세균전을 만천하에 폭로하였다. 국제민주법률가협회조사단 단장은 1952년 4월 1일 성명에서 《조선에서 미국군대가 세균곤충을 산포하고있는것은 조선인민군 및 평화적주민에 대하여 한개의 엄중한 죄행으로 되였다. 이 죄행은 1907년 륙전법규 및 관계적조문에 관한 헤그협정을 위반한것이며 1925년 제네바협정에서 거듭 서술되고 국제적으로 공인된 세균무기사용금지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화학무기사용도 서슴지 않고 감행하였다.
공개적인 전쟁으로써는 공화국을 이길수 없다는것을 깨닫게 된 미제침략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저들의 침략적목적을 이루어보려고 발악하였다.
그 대표적실례로 되는것이 바로 금지된 화학무기의 사용이였다. 미제침략군은 1951년부터 북반부 여러 지역에서 화학무기를 대대적으로 사용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1951년 2월부터 1953년 7월까지의 기간에 강원도, 황해도, 평안남도를 비롯한 공화국북반부의 24개 시, 군과 전선지구들에 수많은 화학무기를 사용하였다.
또한 인민군전연진지는 물론 후방의 평화적도시들과 농어촌들에까지 대량살륙무기의 하나인 스파나팜탄을 1 500여만발이나 사용하는 범죄적만행을 감행하였다.
※ 나팜탄은 제2차 세계대전시기인 1944년 6월 마리아나제도에 미륙해공군이 상륙했을 때 전술적인 무기로 처음 사용되였다.
그후 미제는 1945년 3월 9일과 10일 밤에 소이탄과 나팜탄을 혼합한 폭탄을 일본의 수도 도꾜에 사용하였다. 그날 밤 279대의 미군《B-29》폭격기는 목조 및 회벽건물로 이루어진 이 도시에 나팜탄을 투하하여 도시건물의 4분의 1을 파괴함으로써 100만명이 집을 잃게 하고 8만명이상이나 살해되게 하였다. 이 수자는 히로시마에 대한 원자폭탄폭격에서 살해된 사람의 수와 맞먹는것이다.
미제야수들은 원자폭탄에 못지 않는 대량살륙무기인 나팜탄을 조선전쟁에 마구 사용함으로써 우리의 도시와 농촌을 불태워 재더미로 만들고 우리 겨레를 대량살륙하였다.
미제는 독해물의 사용도 서슴지 않았다.
조선전쟁에서 미제의 유독성가스의 대량적인 사용은 1951년 5월 6일 남포시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과 동시에 독가스탄을 마구 떨어뜨린것으로부터 시작되였다.
미제공중비적들은 남포시에 대하여 네차례에 걸쳐 맹폭격을 감행하고 그 부근지대들에 독가스탄을 투하하였다. 미제의 질식성독가스무기의 야수적만행으로 하여 1 379명의 주민들이 살해되였다.
미제의 화학무기사용은 그 공격목표가 한정된 지역이나 장소만이 아니였다.
전선과 후방의 어디라 할것없이 모든 지역, 모든 대상에 대하여 임의의 시각에 가해졌다.
1952년도에 들어서면서 적의 화학무기사용은 전면적세균전과 때를 같이하여 더욱 강화되였다.
지어 적들은 평화적도시들은 물론 수십호 되나마나한 자그마한 농가지대들에까지 화학무기를 사용하였다.
미제는 1952년 1월 9일 강원도 문천군 학성리(당시)의 수십호 농가들을 대상으로 5발의 질식성독가스탄을 뿌리여 4명의 무고한 인민들을 희생시키고 83명을 중독시키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미제침략자들은 1952년 2월 27일부터 4월 9일까지의 기간에 33차에 걸쳐 독가스탄을 사용하였다. 같은 해 2월 27일부터 4월 26일에 걸치는 약 2개월기간에만 하여도 미제침략군 지상부대들은 질식성 및 최루성가스탄을 41차에 걸쳐 우리의 방어진지에 발사하였다.
이것은 미제가 감행한 화학전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 미제는 전선에서 당한 참패를 만회하기 위하여 최후발악을 하던 1952년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동안에 화학무기를 제일 많이 썼으며 그 회수는 조선전쟁의 전기간에 사용한것의 절반이상에 달하였다.
조선전쟁시기 미제침략군이 세균 및 화학무기사용으로 저지른 야만적인 학살만행은 실로 천추에 용납 못할 대범죄이다.
2010년 4월
2. 조선전쟁과 미군의 만행
3) 인두겁을 쓴 살인마
□ 세균 및 화학무기사용도 서슴지 않고
조선전쟁에서 미제가 감행한 세균 및 화학무기의 사용은 우리 민족멸살을 노린 대범죄였다.
이러한 불순한 목적으로부터 미제는 조선전쟁이 발발하자 세균 및 화학무기사용을 제창하면서 그것을 저들의 침략전쟁수행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내세웠다.
미제는 시험적단계로서 국부적인 세균전만행을 교활하고 음흉한 방법으로 진행했다.
미제침략군은 1950년 12월초 공화국북반부의 일시적강점지역에서 쫓겨가면서 평양시, 평안남북도, 강원도, 함경남도, 황해도 등 여러 지역들에 천연두를 비롯한 수많은 전염병균들을 음흉한 방법으로 전파시켰다.
미군은 《가택수색》을 구실로 주민들을 강제로 집에서 몰아내고는 천연두균에 오염된 헌옷가지들과 어린이놀이감들을 집안에 마구 널어놓았다.
이리하여 미군이 쫓겨간 때로부터 7∼8일간의 잠복기가 지난 12월 중순에 이르러 천연두가 35개 지역들에서 동시에 발생하였다.
※ 미제야수들이 퍼뜨린 세균들에 의한 전염병은 1950년 12월 중순부터 1951년 1월까지 미군이 쫓겨난 평양시, 평안남북도, 강원도, 황해도 등 지역에서 폭발적으로 발생하였으며 발병건수는 급격히 증가되여 1951년 4월에 이르러서는 3 500건이상에 달하였다. 특히 미군의 일시적강점으로부터 해방된 강원도에서 1 126건, 함경남도에서 817건으로서 가장 심하게 천연두가 만연되였다.
미군은 천연두와 함께 류행성출혈열병원체도 마구 뿌리는 야수적만행을 감행하였다.
미군은 서울 이남 37°선까지 쫓겨가게 되자 인민군대의 진격을 막아보려고 발악하면서 38°선 중부이남지방과 서울 이북사이에 류행성출혈열병원체를 뿌리여 이 지역에 살던 수많은 주민들에게 심한 고통을 주고 귀중한 생명을 빼앗아가는 범죄를 저질렀다.
그후 전선이 38°선에서 고착된것으로 하여 류행성출혈열병원체의 피해를 오히려 저들이 입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였다.
※ 당시 미제가 극히 줄여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이 병에 걸려 2 100여명의 미군이 쓰러졌다고 한다. 이것이 미제가 전파한 류행성출혈열병원체에 의해 미군자신이 벼락을 맞게 되여 당시 세계적물의를 일으킨 유명한 《손오열사건》이였다.
이에 급해맞은 미제는 미륙군의 군의(세균전문가, 일본세균전범자 포함)들로 구성된 조사단을 부랴부랴 조선전선에 파견하는것과 같은 추태까지 부리였다.
이들이 남조선에 기여든것은 미제의 지령에 따라 감행한 류행성출혈열에 의한 세균전의 효능을 알아보고 더 강한 병원체를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다.
이에 대하여 1951년에 일본에서 발행한 《일본의사신보》에 련재된 《방역비화》(4)는 일본세균전범자들이 조선전쟁시기 맥아더사령부의 지시로 《현지(조선전선)에 파견되여 약 4개월동안 머물러있으면서 류행성출혈열병원체의 확보》에 종사하였다는것을 폭로하였다.
미군은 평화적주민들뿐아니라 거제도와 태평양상의 여러 섬들에 인민군전쟁포로들을 가두어넣고 세균무기시험대상으로 삼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살륙하는 야수적만행도 서슴없이 감행하였다.
1951년 3월 《유엔군사령부》의 《위생복리처장》 젬스준장이 인솔하는 제1091호 세균살륙정은 비밀리에 동해안 원산앞바다와 거제도앞바다에 정박하고있으면서 인민군전쟁포로들을 대상으로 매일 3 000여회의 세균무기실험을 감행하였다.
※ 1951년 5월 18일 UP통신은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이 배의 실험실에서는 36명의 세균전문가들이 북조선포로들을 대상으로 매일 3 000여회의 실험을 진행하고있으며 그 결과 거제도에 있던 북조선포로중에서 1 400여명은 중병에 걸렸고 그 나머지가운데서 80%는 모종의 질병에 걸렸다.》
미제는 1952년에 이르러서는 국부적인 단계로부터 전면적인 단계에로 이행하여 지역에 관계없이 대대적으로 세균탄을 투하하였다. 미제의 전면적단계에 따르는 세균전만행에서 특징적인것은 세균무기를 더욱 광범히 적용하기 위하여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데 있다.
미제침략군은 세균전을 정규작전으로 벌릴데 대한 상전의 명령에 따라 1952년 1월부터 3월까지 질병의 만연성정도, 세균무기와 용기의 종류별상태, 운반수단으로서의 비행기의 종류별적합성, 각이한 지대에 대한 세균무기의 사용효과, 투하하는 방법 등 세균전을 련마하는데 목적을 두고 공화국북반부의 서북부와 중요수송로, 후방의 주민지대에 매월 평균 10차이상 세균탄을 떨구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미군은 1952년 1월 28일부터 페스트, 콜레라 등 전염병을 전파하는 많은 량의 각종 독벌레들을 비행기로 실어다 공화국북반부지역에 련속 산포하였다.
미군은 1952년 1월 28일 강원도 평강군에, 2월 11일 철원군에, 17일 평강군에, 18일 평안남도 안주시에, 23일 평원군에, 25일 강원도 문천시에, 26일 평안남도 대동군에, 27일 평양시 강동군과 평안남도 순천시에, 29일 황해도 수안군에 파리와 모기, 거미를 비롯한 전염병균을 가진 각종 독벌레들을 대량적으로 뿌리였다.
※ 미제침략자들은 전면적인 세균전을 벌리기 시작한 1952년 1월 초순부터 3월에 이르는 기간에만도 공화국북반부의 169개 지역에 연 804차에 걸쳐 독벌레들과 균이 묻은 여러가지 물건들을 떨구었을뿐아니라 중국 동북지방의 광범한 지역에 이르기까지 세균탄을 떨구는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미군의 야수적이고 전면적인 세균전은 작전범위와 규모가 방대한 계획적이며 집중적인 세균공세로서 전쟁력사상 그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대범죄였으며 세균무기의 적용수단과 방법의 다양성, 악랄성에 있어서 전대미문의 대인간살륙전, 조선민족말살전이였다.
※ 1952년 3월 조선에 체류하면서 평양, 남포, 태천, 벽동, 안주, 안악, 신천, 사리원, 원산일대에서 전문적인 조사를 진행한 국제민주법률가협회조사단이 발표한 《조선에서의 미군범죄에 관한 보고서》를 비롯하여 《조선과 중국에서의 세균전사실에 대한 국제과학조사단의 조사보고》는 미군의 살인적인 세균전을 만천하에 폭로하였다. 국제민주법률가협회조사단 단장은 1952년 4월 1일 성명에서 《조선에서 미국군대가 세균곤충을 산포하고있는것은 조선인민군 및 평화적주민에 대하여 한개의 엄중한 죄행으로 되였다. 이 죄행은 1907년 륙전법규 및 관계적조문에 관한 헤그협정을 위반한것이며 1925년 제네바협정에서 거듭 서술되고 국제적으로 공인된 세균무기사용금지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화학무기사용도 서슴지 않고 감행하였다.
공개적인 전쟁으로써는 공화국을 이길수 없다는것을 깨닫게 된 미제침략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저들의 침략적목적을 이루어보려고 발악하였다.
그 대표적실례로 되는것이 바로 금지된 화학무기의 사용이였다. 미제침략군은 1951년부터 북반부 여러 지역에서 화학무기를 대대적으로 사용하였다.
미제침략자들은 1951년 2월부터 1953년 7월까지의 기간에 강원도, 황해도, 평안남도를 비롯한 공화국북반부의 24개 시, 군과 전선지구들에 수많은 화학무기를 사용하였다.
또한 인민군전연진지는 물론 후방의 평화적도시들과 농어촌들에까지 대량살륙무기의 하나인 스파나팜탄을 1 500여만발이나 사용하는 범죄적만행을 감행하였다.
※ 나팜탄은 제2차 세계대전시기인 1944년 6월 마리아나제도에 미륙해공군이 상륙했을 때 전술적인 무기로 처음 사용되였다.
그후 미제는 1945년 3월 9일과 10일 밤에 소이탄과 나팜탄을 혼합한 폭탄을 일본의 수도 도꾜에 사용하였다. 그날 밤 279대의 미군《B-29》폭격기는 목조 및 회벽건물로 이루어진 이 도시에 나팜탄을 투하하여 도시건물의 4분의 1을 파괴함으로써 100만명이 집을 잃게 하고 8만명이상이나 살해되게 하였다. 이 수자는 히로시마에 대한 원자폭탄폭격에서 살해된 사람의 수와 맞먹는것이다.
미제야수들은 원자폭탄에 못지 않는 대량살륙무기인 나팜탄을 조선전쟁에 마구 사용함으로써 우리의 도시와 농촌을 불태워 재더미로 만들고 우리 겨레를 대량살륙하였다.
미제는 독해물의 사용도 서슴지 않았다.
조선전쟁에서 미제의 유독성가스의 대량적인 사용은 1951년 5월 6일 남포시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과 동시에 독가스탄을 마구 떨어뜨린것으로부터 시작되였다.
미제공중비적들은 남포시에 대하여 네차례에 걸쳐 맹폭격을 감행하고 그 부근지대들에 독가스탄을 투하하였다. 미제의 질식성독가스무기의 야수적만행으로 하여 1 379명의 주민들이 살해되였다.
미제의 화학무기사용은 그 공격목표가 한정된 지역이나 장소만이 아니였다.
전선과 후방의 어디라 할것없이 모든 지역, 모든 대상에 대하여 임의의 시각에 가해졌다.
1952년도에 들어서면서 적의 화학무기사용은 전면적세균전과 때를 같이하여 더욱 강화되였다.
지어 적들은 평화적도시들은 물론 수십호 되나마나한 자그마한 농가지대들에까지 화학무기를 사용하였다.
미제는 1952년 1월 9일 강원도 문천군 학성리(당시)의 수십호 농가들을 대상으로 5발의 질식성독가스탄을 뿌리여 4명의 무고한 인민들을 희생시키고 83명을 중독시키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미제침략자들은 1952년 2월 27일부터 4월 9일까지의 기간에 33차에 걸쳐 독가스탄을 사용하였다. 같은 해 2월 27일부터 4월 26일에 걸치는 약 2개월기간에만 하여도 미제침략군 지상부대들은 질식성 및 최루성가스탄을 41차에 걸쳐 우리의 방어진지에 발사하였다.
이것은 미제가 감행한 화학전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 미제는 전선에서 당한 참패를 만회하기 위하여 최후발악을 하던 1952년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동안에 화학무기를 제일 많이 썼으며 그 회수는 조선전쟁의 전기간에 사용한것의 절반이상에 달하였다.
조선전쟁시기 미제침략군이 세균 및 화학무기사용으로 저지른 야만적인 학살만행은 실로 천추에 용납 못할 대범죄이다.